[진로 찾아가기] 공연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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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제작비 마련부터 캐스팅·홍보까지 공연의 모든 걸 책임진다
송승환 대표가 뮤지컬 ‘난타’ 배우·스태프와 조명 및 연기 점검을 하고 있다. 공연기획자는 공연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
제작·마케팅 각 부문 돌며 최소 7년 수련
100여 명 스태프 하나로 묶는 소통력 필요
전공보다 다양한 문화경헝과 관점 갖춰야
한국 공연 시장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네 배 가까이로 성장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DP) 중 문화소비 비중은 OECD 평균 5.5%보다 적은 3.7%(문화체육관광부 ‘2013 공연예술실태조사’) 수준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미래는 밝다. 공연을 기획하고 세계로 소개하는 공연기획자의 세계를 살펴봤다.
무대 뒤에서 무대를 완성하는 사람
공연기획자는 영어로 프로듀서다. 뮤지컬 ‘난타’를 만든 송승환 PMC 프로덕션 대표는 “공연기획자는 공연에 관한 A부터 Z까지를 총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공연기획자의 업무는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작품이 관객에게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을지’, ‘흥행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예를 들어 ‘아리랑’을 주제로 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극장에서 어떤 배우들을 데리고 공연을 할 것인지’에 대한 초기 기획서를 만든다. 그런 다음 제작비를 지원할 투자자를 물색한다. 뮤지컬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데 드는 비용은 최소 1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든다. 제작비 마련도 공연기획자의 역할 중 하나다. 이후 배우와 스태프를 선정하고 공연 내내 작품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 송 대표는 “공연이라고 하면 단순히 무대 위의 배우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대 뒤에는 배우들의 몇 배에 달하는 스태프들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공연기획자는 연출·무대·조명·음향·의상·세트·분장·소품 등 100여 명에 이르는 관련 인원을 통솔해야 한다. 배우 캐스팅을 오디션을 통해 할지 티켓 파워가 있는 스타를 캐스팅할지 결정하는 것도 공연기획자의 몫이다.
종종 공연기획자와 연출자의 역할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다르다.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는 “공연기획자가 공연을 총괄하는 사람이라면 연출자는 공연의 예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공연의 방향을 공연기획자가 생각해서 연출자와 조율하고 연출자는 그에 맞는 예술적 표현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치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학과장은 “종종 연출가와 공연기획자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며 “예술성을 강조하는 연출가와 대중적인 감각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공연기획자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로 이런 크고 작은 갈등 조율도 기획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라고 말했다.
작품의 기획 방향이 결정되고 제작비가 마련돼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고 하자. 공연기획자의 업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송 대표는 “티켓 판매와 홍보·광고·마케팅이 중요해지는 단계”라고 말했다. 하나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기획·제작·마케팅·관리 등 각 파트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PMC 프로덕션의 경우 10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작품을 기획하는 기획 파트, 배우·스태프들과 계약을 하고 연습을 하며 실질적으로 공연을 만드는 제작 파트, 홍보·광고 및 티켓 판매 프로모션 등을 담당하는 마케팅 파트, 회계와 경영을 담당하는 관리 파트로 나뉜다.
오지원 국립극장 공연기획부 책임PD는 공연기획자가 되기 이전에 뮤지컬 공연기획사의 마케팅 파트에서 5년간 경력을 쌓았다.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하고 방송이나 신문, 잡지 같은 매체에 공연을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오 책임PD는 “기획사에 입사하면 파트별로 업무는 나뉘지만 회사 막내로 궂은일부터 시작할 각오가 필요하다”며 “때로는 수십 부의 대본을 복사하기도 하고 공연에 필요한 자료 조사나 티켓 판매에 이르는 전천후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송 대표도 “난생처음 가보는 회사의 ‘여성 사우회’를 찾아 티켓을 팔아야 할 때도 있다”며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공연을 설명하려면 ‘낯’이 좀 두꺼울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데는 최소 7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랍어·국문학·가야금…전공 다양
공연기획자가 되기 위해 어떤 학과를 반드시 전공해야 한다는 틀은 없다. 송 대표는 대학에서 아랍어과를 중퇴했다. 그는 “상경계열에 입학해 대기업에서 무역 관련 일을 하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며 “상경계열에 떨어지고 때마침 분 중동 바람에 편승해 아랍어과로 진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하고 신촌의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기획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아역 배우 출신이기 때문에 공연의 흐름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데 무리가 없었다.
신 대표는 국문학도다. 문학을 좋아해 국문학을 전공했다. 공연을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영화연출을 배우기도 했다. 신 대표는 “공연에 올려지는 대다수 작품은 고전 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책을 통해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소설이나 시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꼭 어떤 학과나 전공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가 신 대표를 만난 날 오디뮤지컬컴퍼니는 기획 파트 신입사원 면접이 있었다. 지원자들의 전공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신 대표는 “공연 산업도 글로벌화 되면서 해외파들의 지원이 늘고 있으며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공연에 대한 열정으로 도전하고 있다”며 “미국 브로드웨이로의 진출하는 일도 있고 외국 배우나 스태프들과의 협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요즘은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 책임PD는 가야금을 전공했다. 가야금 연주를 하면서 전통 음악을 쉽고 재밌게 기획해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공연 기획에 관심을 두게 됐다. 오 책임PD는 “전통 예술을 더 쉽고 편안하게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며 “가야금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전통 예술 알리기에 대한 목마름도 덜 했을 것이다”고 했다.
전공은 불문이지만 공연 전반에 걸친 이해는 필수다. 송 대표는 “전공보다는 얼마나 공연 혹은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감각을 지녔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며 “미술전시·콘서트·연극·뮤지컬 등 문화 관련해 모든 것들을 두루 친근하게 접하면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오 책임PD는 “악기를 익히는 것도 좋고 연기나 의상 디자인 같은 공연 관련 취미 하나 정도는 배워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경영을 알아야” MBA 다니기도
하나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짧게는 1년, 평균 2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공연은 대략 기획→아이디어 회의→투자자 모집→극장 섭외→연출자 섭외→기획·제작·마케팅·관리 파트 구성→배우 캐스팅→무대 제작, 배우 연습, 소품 및 기타 제작→리허설→홍보→공연→마무리의 순서를 거친다. 신 대표는 “맨 오브 라만차처럼 과거 공연을 다시 무대에 올릴 경우엔 이 모든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1년 정도지만 처음 무대에 올리는 초연작의 경우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2년 정도 잡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긴 시간 공연을 준비하는 만큼 제작비를 배우 캐스팅에 집중할 것인지 마케팅에 집중할 것인지 등도 결정해야 한다. 신 대표의 경우 경영과 자금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수료했다.
1)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한 장면인 무어인의 댄스 중. 2)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뮤지컬 '닥터지바고'의 제작 발표회에서 공연 소개를 하고 있다.
만일 해외 판권이 있는 라이선스 뮤지컬을 국내에 들여오고 싶다면 공연권을 얻는 일도 중요하다. 판권을 가지고 있는 해외 기획사에 공연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전달하고 상호 계약으로 라이선스를 얻는다. 직접 만든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면 ‘어떤 뮤지컬을 올릴 것인지’ ‘어떤 줄거리로 구성할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송 대표는 “새로운 뮤지컬을 창작할 때는 크리에이티브 팀과 자주 만나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며 “공연기획자와 작가, 작곡가가 하나의 팀을 이룬 크리에이티브 팀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의 뼈대와 살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송 대표가 만든 난타는 창작 뮤지컬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든 한국 뮤지컬로 대사 없이 주방 기구를 두드리며 주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뮤지컬 퍼포먼스다. 송 대표는 “창작의 경우 대본과 음악을 모두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10년 전 돈키호테를 주제로 한 ‘맨 오브 라만차’를 국내에 선보였다. 라이선스 뮤지컬로 기본 틀인 대본과 음악을 한국적 정서로 새롭게 기획했다. 신 대표는 “라이선스가 있는 작품들의 경우 오랫동안 사랑받았기 때문에 예술성이나 완성도 면에서 믿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해외 공연을 그대로 답습해선 안 되고 우리 식으로 기획자의 색깔을 담아 재창조하는 것이 작품의 성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국립극장의 오 책임PD는 ‘여우락(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여우락은 한국 음악을 재해석해 한 달 동안 공연하는 전통 예술 페스티벌이다. 오 책임PD는 “전통 예술가들은 전통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에 갇혀 이단아가 될 것인지 전통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며 “관객과 소통하고 전통을 지키며 새로운 장르로 확장할 수 있는 신명 나는 놀이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직업
일단 공연 일정이 결정되면 그때부터 공연기획자의 삶은 내 것이 아닌 공연의 것이 된다. 오 책임PD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공연기획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게 공연기획자의 하루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연습이 끝나면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작가나 무대디자이너, 조명감독 등과 수정할 사안에 대해 논의를 한다. 광고와 홍보 마케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공연 일정에 차질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다 보면 24시간이 부족한 날들이 며칠씩 이어진다. 아티스트·연출·작가·투자자·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종일 끊임없이 만나야 해서 사람 만나는 일을 싫어해선 안 된다. 송 대표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싸워야 하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싸움을 말리기도 한다”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스트레스고 부담이 되는 사람은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공연기획자에게 가장 보람된 순간은 관객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극장을 나설 때다. 신 대표는 “치열하게 공연을 만들어 무대 위에 올리는 건 때로 지치고 힘에 부치는 일이다”라며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행복감에 젖은 표정으로 극장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큰 보람을 얻는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어떤 직업에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직업이 몇 개나 되겠느냐”며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준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공연기획자란 직업은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공연 기획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공연을 좋아한다고 해서 잘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공연기획자들은 공연을 보는 눈, 예술과 대중성을 두루 이해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오 책임 PD는 “청소년기에는 공연을 보고 자신의 느낌을 글로 써봤으면 좋겠다”며 “공연 관련 후기나 기사를 읽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내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고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나만의 관점과 감각을 쌓아간다면 훌륭한 공연기획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