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10개, 양파 4개, 양배추 7개, 당근 10개. 비언어극 `난타` 1회 공연에 소모되는 야채다. 1997년 초연 후 17년 동안 2만8547회 공연에서 채소 28만9838개(26일 기준)를 다져왔다. 사용된 도마만 1760개이며, 칼 1만6133자루를 썼다.
배우들의 현란한 칼질 요리와 사물놀이, 북춤은 지금까지 관객 919만2736명의 마음을 `난타`했다. 이 많은 관객들이 공연 하나를 본 기록은 국내 최초다. 올해는 1000만명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100만명이 관람했기에 오는 8월에 1000만명 기록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난타` 흥행 신화를 쓴 송승환 PMC프로덕션 회장(57)은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고 한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사물놀이 리듬을 활용한 비언어극을 만들면 해외 시장에서도 가능할 것 같았다. 타악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작품의 재미가 의외로 커서 관객들이 시원해하더라"고 말했다.
한국의 흥과 신명을 공연에 접목한 `난타`는 폭발적 힘을 발휘했다. 48개국 285개 도시에서 공연됐으며 관광객의 필수 여행 코스로 자리잡았다. 현재 서울 명동과 충정로, 제주도, 태국 방콕 전용극장에서 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송 회장은 성공 비결로 끊임없는 수정 작업과 해외 마케팅을 꼽는다. 뉴욕 브로드웨이 연출자 3명을 불러 세계인에게 통하는 작품으로 보완했다.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똑같은 장면에서 웃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후에도 계속 작품을 뜯어고쳤고 지금도 업그레이드 중이다.
"3차원 홀로그램 기술을 공연에 접목하고 싶어요. 도마를 두들길 때 소리의 영상이 함께 움직이면 생동감이 넘칠 것 같아요. 한국의 강점인 디지털 기술을 소개하는 장이 될 겁니다."
안에서는 작품 수준을 끌어올리고 밖에 나가서 관광객을 데려오는 게 쉽지 않았다. 일본 여행사를 직접 찾아가 시연을 하며 설득했으나 난색을 표하는 곳이 많았다.
"2박3일 서울 여행 코스에서 때밀이 관광과 야간쇼핑을 밀어내고 `난타`를 넣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직접 공연을 보여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죠. 일본 여행사들은 의자와 화장실, 공연 감상평을 꼼꼼하게 설문조사한 후 결정했어요. 다행히 입소문이 나면서 일본 관광객들이 몰려왔죠."
2000년 전용 극장이 문을 연 후 일본 관광객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2011년부터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와 지난해 역전됐다.
"요즘 눈 구경하러 오는 동남아 관광객들이 많아 어느 정도 유지가 됩니다. 하지만 제주도 전용관은 엔저와 외교 갈등으로 일본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아요. 방콕 전용관도 시위가 들끓어 흥행이 어렵고요. 하지만 버티면 좋아지겠죠. 2001년 미국 투어에 나섰다가 9ㆍ11 테러로 모든 공연이 중단됐을 때보다는 나아요."
관광객 비중이 높아지면서 정작 내국인들은 `난타`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그래서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동참해 티켓 50% 할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얼마 전 극장에서 17년 전 초등학생 때 본 `난타`를 다시 찾은 직장인을 만났어요. 올해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내국인을 위한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는 지금까지 연극과 뮤지컬 40여 편을 제작했지만 모두 `난타`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만큼 공연 사업은 리스크가 크다.
"`형제는 용감했다`와 `젊음의 행진`은 어느 정도 성공했어요. 하지만 `난타`를 따라갈 수는 없죠. 그동안 거쳐간 배우와 스태프, 직원들 덕분이에요. 우리 할머니는 제가 상을 타거나 대학에 입학하면 `고맙다`고 하셨는데 그 뜻을 이해할 것 같아요. `난타`를 만든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워요."
[전지현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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